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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01일
감독이야기를 하나 더 해보자. 예전에 영화공부 할 때 (아마도 ‘연출론’ 강의로 기억하는데) 어느 강사가 “이 세상에 영화감독을 둘로 나누라면 히치콕과 성룡으로 나눌 수 있다” 고 했던 말을 기억한다. 전에 이 이야기를 한번 언급하기도 한 것 같은데 (블로그 질도 몇 년 하다보니 했던 이야긴지 아닌지 헷갈린다.) 이 말은 사전에 철저하고 완벽하게 준비된 계획(콘티)을 가지고 현장에서 하나의 흐트러짐 없이 카리스마를 발휘하면서 진지하게 기계적으로 찍는 감독 히치콕과 마치 즐거운 오락을 하는 것처럼 준비된 계획보다는 현장에서의 즉흥성, 그리고 왁작 지껄한 현장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찍는 감독 성룡을 빗대어 극과 극을 의미하는 말이다. 물론 비약적으로 단순화 시켰다.
알프레드 히치콕 : 이점은 중요하다. 예를 들면 600만 달러가 든 영화가 무책임한 편집자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감독에게 커다란 문제이다. 브라이언 드 팔마 : 영화를 촬영할 때 나는 스크린에 최종적으로 어떤 것이 나타날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편집실에서 놀랄 일은 거의 없다. 브라이언 드 팔마는 다들 아시다시피 히치콕의 문하생이다. 이렇게 철저한 준비와 빈틈없는 현장진행으로 히치콕의 경우 촬영이 끝나면 편집자의 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또한 히치콕은 배우란 꼭두각시 인형과 같아서 줄로 조종해야 한다고 말할 만큼 자기 자신 이외에 것에 대한 자유의지를 철저히 봉쇄시켰다. 그렇다고 성룡의 오락하듯 하는 현장진행이 히치콕의 그것에 뒤쳐진다거나, 혹은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감독 고유의 스타일 일뿐이며, 각각의 영화에 따라, 조합된 사람들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니까. 암튼, 이 두 스타일에서 가장 큰 차이는 현장분위기, 편집의 개입유무 정도가 된다. 영화 공부할 때 디지털 카메라로 29분 57초짜리 단편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 이 영화를 준비할 때 나는 내가 ‘성룡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다지 화를 내는 성격도 아닌데다 돈 한 푼 없이 무임금으로 내 작품을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들과 화기애애한 현장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었고, 아직 아마추어인지라 서로 서로 토의해가면서 의견절충하면서 찍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라 생각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말이다. 그런데 첫 회 촬영장에 가서 내가 성룡이 아니라 히치콕에 가깝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초반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준비한 계획대로 진행이 삐걱삐걱 관절염 걸린 소리를 내면서 버럭 버럭 버럭질을 해대는 나를 보았고, 대안이 떠오르지 않아 골을 싸매는 내 앞에서 진지하지 못한 후배들에게 화를 내는 나를 보았고, 아직 공부하고 있는 아마추어를 데려다 놓고 ‘그것밖에 못하냐?’ 고 프로의 실력을 요구하면서 숨통을 졸라대면서 신경의 칼날을 미친 놈처럼 세워대고 있었다. (총 5회 촬영이었는데 2회차 촬영 때 벌써 두어 명의 스텝들이 말도 없이 나오질 않더라.) 가끔씩 비디오테이프로 보관하고 있는 그 단편을 보면서 그 엄청난 조악함에 피식거리며 웃곤 하는데 당시 카메라 뒤의 풍경들이 떠오르면 그들에게 미안스럽기도 하다. 돈도, 시간도, 경험도 모자란 아마추어 감독에게 있어 결과에 대한 두려운 강박증으로 인해 눈앞으로 거인처럼 다가오는 답답함에 날 세워 호통만 쳐댄 게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으로 나의 부덕함을 덮으며 넘어가고 있지만 말이다. 지금 나에게 다시 영화감독의 메가폰을 쥐어 준다면 누구처럼 할지는 나도 모르겠다. 뭔 짓을 하더라도 베테랑의 여유로운 몸짓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첫 경험자의 쩔쩔매는 모습도 통과의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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