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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1월 23일
"한국영화 위기론은 집어치워라"
워낙에 대단한 분이고, 그것의 위력을 가늠할 순 없지만 일정정도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권력을 형성하고 있을 만큼 두터운 지지층을 가지고 계신 분의 글에 반한 글을 쓰려니 머뭇거려졌던 게 사실이다. 그래도 술값내고 찜찜하게 마신 놈처럼 아린 가슴언저리 한구석이 가라앉질 않아 (조금 늦은 듯하지만) 작은 소리를 던져본다. “한국영화 위기론은 집어치워라”는 글은 이미 이전에 보여주신 ozzyz님의 명성을 그대로 보여주듯이 날카롭고 수려하면서도 논리적이며 매끄럽게 정리된 글이다. 각 문단 문단에 담긴 내용의 개인적 느낌은 한국영화 현장에서 밥 먹고 살고 있는 자로서도 대체로 덧글을 남겨주신 그들처럼 공감하고 동의한다. 문제는 과연 이글을 쓰신 의도가 무엇이고 그것으로 인한 파장(?)에 대한 고민이 얼마나 있었는가에 대한 언짢음이다. 하나. 기자의 입장으로서, 혹은 아카데미에서 공부만 해온 사람들이 보아온 그간의 한국영화계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0년 동안 내가 겪어본 한국 영화계는 위기가 아닌 시절이 없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그리고 아직도 사실 믿기지도 않는 천만관객이 도래하면서 르네상스를 언론에서 외쳐댔지만 그것은 단지 일장춘몽에 다름 아니었으며 그들 소수만의 샴페인이었지 전체적으로 보면 그 어느 한해 안정적인 산업구조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매번 또 다른 영화를 할 때마다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프로젝트별로 움직이다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지만.) 그것은 글쓴이가 제시하는 (열개가 망하고 하나가 크게 흥하는 수치를 평균치내는)시장의 점유율과 상관없다. 그래서 그간의 “위기론”(혹은 르네상스론)은 ozzyz님의 말씀처럼 “양치기 역할을 자처해온 건 언론의 호들갑”이었음이다. 현장에서의 여론은 먹고 사는 불안함에 그냥 ‘항상 위기 중’ 이었을 뿐이다. 둘. 중국을 제외한 여타의 나라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미개인 취급받는 다운로드로 인해 받는 피해자는 올곧이 영화인(업자와 창작인 모두)이고 그 수혜자는 남의 창작물을 가지고 자신의 것처럼 브로커 역할을 자행하는 사이트 운영자들, 그리고 의식조차 사라진 다운로더들임은 자명하다. 1차 판권인 극장 출입에 대한 문제는 둘째고(간과되어서 그렇지 극장도 타격이 있다.) 최소한 2차 판권의 몰락을 가져온 이 거대한 문제는 현재의 영화산업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기에 당연히 거론을 하신 거겠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그리고 현재 영진위와 제협에서 애써 진행 중이어서 새로울 게 없는 대안(다운로드의 합법화 - 이게 바깥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재원확보도 그렇고, 관계기관의 협조, 그리고 기술개발, 관계법안의 수정, 이후 또 다른 불법의 대응책마련 등)을 말하기에 앞서 원론적인 문제를 먼저 짚고 갔어야 했다. 대중적인 각성(배웠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캠페인은 안 된다.” 라는 투의 그것 - 그런데 왜 안 되는가?)의 제기 없이 “왜 디지털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느냐?” 라는 질책은 기껏 만들어 놓으면 또 다른 발전이 있을 터이기에 돌고 도는 이야기일 뿐. 위 글의 표현을 따르자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와 같은 하나마나한 곡소리나 입에 물고 있는 꼴이 아닌가 싶다. 셋. 영화로 밥을 먹는 자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투자, 배급, 마케팅, 그리고 외국영화 수입을 하는 영화(산)업자와 그 외 창작에 매진하며 영화를 만드는 영화창작인. 위 글이 미덕을 갖추지 못한 또 하나의 부분은 후자의 영화창작인들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양치기 언론을 자처하는” 기자들의 미래 없는 호들갑과 배급의 독과점, 그리고 다운로드에 대한 문제점을 지면의 거의 대부분 할애하면서 이야기하다가 결국 결말을 영화의 흥행에 목숨을 담보한 그 상황, 그 공간에서 그것밖에 말할 수 없는 영화창작인의 애절한 읍소를 비아냥거림으로서 글의 타겟이 그들이 아니었을 진데 맥락과 상관없이 슬프게도 그 진정성을 헤아리지 못하고 뭉개버리면서 잔인한 카타르시스를 만들고 있다. 넷. 지금은 진정으로 한국영화가 위기라는 것이다. 이미 작년 스크린 쿼터가 무너지면서 “당장 망가질 둑에 주먹 하나 넣고 새파랗게 질린 네덜란드 소년 꼴”이 아니라 이미 한국영화의 댐은 무너져버려서 네덜란드 소년은 그 거센 물살에 휩쓸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옳다. 위 본 글의 표현처럼 이미 분열이고 망조고 해서 무슨 대책, 무슨 대책 말해도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 없을 정도로 황폐해져 있으며 단 시간에 끝날 위기는 아니라는 것을 굳이 밖에서 그렇게 집어주지 않아도 우리 영화 노동자들은 입 모아 이야기하면서 벌벌 떨면서 ‘기술이나 배울걸’ 하면서 후회 중이다. 위의 네 가지 이야기는 검색하면 발에 치일정도로 거추장스럽게 거론되는 이야기이니 정말 아무래도 상관없다. 다만 이런 유의 글은 생산되는 동시에 가져야 할 의무가 있는 법인데 그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말하고 싶다. 글쓴이의 의도(추측은 하고 있지만)와 상관없이 이글이 (예상되었지만) 실패한 것이라는 것은 수많은 덧글이 증명하고 있다. 많은 지면을 할애한 호들갑 떠는 기자와 영화업자들, 그리고 다운로드에 대한 진실된 토론은 사라지고 여타의 얕은 몇 줄의 글들과 마찬가지로 (대체로) 영화인들에 대한 비난만을 자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유의 글들과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는 글들은 너무나 많이 봐와서 체이는 게 자갈이라고 이젠 ‘이놈 심심한가 보다’ 싶기까지 하다. 단지 그런 글들에 하나 더 첨하고자 쓰인 글이라고 믿지 않는다. 좋은 의도로 쓰였다는 것을 백번이고 믿고 싶고 대중에게 공개되는 이러한 글은 지금 한국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꽃(?)같이 던져지는 것이 글의 종착점이며, 결국 (꼭 한국영화만이 아니라) 현재 한국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가급적 올바른 영화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쓰이는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영화현장의 마지막 보루이자 그 시작점을 가져내는 건강한 영화창작인들과의 구분점을 글쓴이가 갖지 못하는 이유(대부분이 다 그렇다.)로 항상 도매급으로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무리 잘잘못을 따져도 그리 페어하지 못하다.(이미 다른 곳-평론, 리뷰 등-에서 지겹도록 두들겨 맞고 있다.) 영화산업에 도움이 되자고 애써 시간과 공간을 빌어 생산되었을 진데 대중들과 창작인들의 괴리를 심화시키고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영화현장에서의 동력을 절망 속으로 자꾸만 밀어 넣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투자자나 제작자의 채근에 바뻐서, 한 작품 끝내면 먹고 살기위해 다른 작품 찾아다니느라 또 바뻐서 기자들이나 행정가들이 만들어내고 인용하는 그래프나 수치 따위를 쳐다볼 시간도, 그럴 용기도, 또한 그럴 기회도 없다. 이론과 실무의 괴리, 책상과 현장의 괴리, 제삼자와 당사자의 괴리, 글 쓰는 자와 노동자의 괴리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나름 그 둘 간의 공조되고 화해될 수 없는 극간을 인정하는 나조차도 “아예 다 망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게 빠를지도 모르겠다.”라고 너무나 거침없이 마지막 문장으로 내던지는 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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