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펄펄 비가 옵니다. by 아우라

“펄펄 비가 옵니다. 하늘에서 비가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주룩주룩 하얀 비를 자꾸자꾸 뿌려줍니다.” 라고 글을 쓰려 하니 딱 그쳐주는 우신의 센스. 비가 오는 날은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 다소 구질구질한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지나고 나야 얼마나 찬란한 빛이었는지를 알게 된다는 20대의 청춘시절엔 가끔 우산을 두고 일부러 비를 맞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흠뻑 젖은 몸으로 집에 와도 몽둥이 들고 혼내는 엄마도 없었고, 수건을 들고 걱정을 해주는 엄마도 없었다. 여태 수영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걸로 보면 그때 잠시잠깐을 빼고는 물(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비는 좋아하는 공놀이를 못하게 하는 장애일 뿐.

그러고 보니 중학교 2학년 때 옆 반과 야구시합을 하다가 중간에 폭우가 쏟아지는데도 그 비를 다 맞으며 야구를 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 이후 며칠간의 몸살감기와 야구글러브에서 풍기는 썩은 내. 그리고 무서운 우라 엄마가 내린 형벌의 추억. 대학 시절 불리던 별명 중에 하나가 ‘물귀신’이었지만 그것은 술을 물같이 마신다고 해서 후배들이 지어 준 것이었고. 벌써부터 까마득하게만 느껴지는 파스텔 톤의 보라색 우산을 같이 쓰고 가면서 내 왼쪽 어깨를 적신 일도 부끄럽게 떠오르는데 이건 빨리 지워버려야 할 몹쓸 기억. 내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비 오는 거리.(나의 늙은 디카는 내리는 비를 보여주지 않는 특수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몹쓸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몹쓸 장면. 다시 비가 온다. 이젠 스토커처럼 징그럽다. 땀 흘리고 난 뒤 샤워를 해도 가시지 않는 이 구질구질한 감정의 분열도 싫고.

덧글

  • 닥슈나이더 2008/07/26 22:48 #

    집이시군요... 저도 집이라는...^^;;
  • 아우라 2008/07/29 00:40 #

    재회가 좀 늦는군요.
    진짜 조만간 회포를 한번 풀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나무피리 2008/07/26 23:03 #

    저도 토요일인데 집에 내내 있었답니다. 비가 내도록 오다가 이제야 좀 잦아들었네요.
    사진이 꼭 오렌지가 가득한 상자를 보는 것 같아요. 따뜻하기도 하고 어쩐지 새콤한 느낌도 들고요. 뽀송한 햇빛이 필요한 시기인데 해가 영 나와주질 않네요.
  • 아우라 2008/07/29 00:41 #

    늙어버린 제 사진기는 절대로 제대로 찍힌 것을 내놓지 않습니다.
    특히나 밤풍경은 말할것도 없지요. 다 저렇게 번져버리니...ㅡ.ㅡ;;
  • 깔깔마녀 2008/07/28 10:58 #

    저는 술을 물처럼 마신다고 술을 못마시게 하는 벌칙을 당한적이...;;; ( ..)
  • 아우라 2008/07/29 00:42 #

    가끔 떼로 술마시면서 게임을 할때 걸리면 앞에 놓인 술한잔 마시는 벌칙이 있곤 했는데 그럴때면 저는 일부러 걸리기도 하고 그랬지요. 술을 못마시게 하는 벌칙이 있을줄은 생각도 못했네요. 진짜 벌칙이군요....^^
  • 2008/07/31 23:11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아우라 2008/08/04 23:14 #

    요 몇주 주말마다 비가 와서 아주 속상해하고 있더랬어요.
    이젠 비도 어쩌다 좋고, 대체로 싫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