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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08월 08일
필리핀 같은 날씨(더운 나라라곤 가본 게 필리핀밖에 없어요.)에 양재로 외근을 가는 전철에서 중학교 2학년이나 될까 말까한 마른 여자아이 여섯을 보았다. 눈에 띄는 옷도 옷이었지만 단연코 그녀들의 헤어스타일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일명 ‘서인영 머리’라 불리는 바가지 스타일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딱히 보려고 본 것도 아니었는데 그네들이 그 나이 때면 다들 그렇듯 조잘조잘 끊임없이 웃고 떠들었기 때문에 음악을 듣고 있던 나뿐만이 아니라 주위의 승객들이 다 한 번씩은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신기해서(?) 보다보니 그녀들은 서툴게 화장까지 했더라. 볼터치만 발갛게 한 친구도 있고, 눈 주위에 색조화장을 한 친구도 있고, 파운데이션을 발랐는지 얼굴 피부가 두터워 보이는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늙은 노인네 마냥 한국사회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순간,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에 내 귀에 꽂혀있던 이어폰에서는 토이의 <그럴 때마다>가 끝나고 다음곡인 신해철의 <아주 가끔은>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대낮에 길을 걷다보면 썰렁함을 느껴 / 왜 그렇게 황당한 표정으로 날 쳐다들 보는지 / 난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책도 봐 / 내 할 일은 알아서 해왔다고 생각해 / 물론 내 치마길이가 좀 짧긴 하지만 / 내 색채감각이 좀 대담하긴 하지만 / 그게 뭔 대수라고 하늘이 무너지니 / 난 그저 나 자신이 소중한 것뿐이야 뭘 봐 .........<중략>.........한평생 남의 눈치만 보면서 살아오다 / 아주 그게 뼛속까지 박혀버린 인종들 있잖니 / 그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뭔지 알아 / 남들도 자기처럼 살기를 바라는 거지 쳇.......<후략> 이 가사에 따르면 나는 남의 눈치만 보다 뼛속까지 박혀버린 인종이 된 셈이다. 1996년도 영화 <정글스토리>의 OST에 포함된 이 노래를 아직 고이 담아 듣고 다니는 것은 신나는 리듬도 리듬이지만 등 긁어주는 시원한 가사에 백번 만번 손을 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평생 남의 눈치만 보면서 살기 바라지 않고, 남들이 자기처럼 살라고 하는 말에 거부감을 가지며 살아왔었다 생각했는데 어느덧 눈에 튀는 어린 그녀들을 보면서 마음과 뇌가 따로 놀기 시작하는 ‘아저씨’가 되었나 싶어 이내 한국사회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집어치웠다. 아마 방학도 하고 해서 그들만의 잠시잠깐 일탈이었으려니. 다만, 다시는 그렇게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지 않을 터이니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책도 보는 그녀들이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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